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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 있으면 손 좀 들어주라.처음에는 나도 술술 이야기가 잘 나왔다. 내가 알고 있는 사

회의 구조라든가 행정의 모습, 그리고 다른 나라들과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리

어렵지 않았다.어느 하나에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워낙 여러 곳에 손을 대보았던 나

는 잡학에는 능했기 때문에 이리저리 할 이야기는 많았다.그러나 그 깊이가 채 하루를

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점에선 충격이었다. 하루가지나고 나자 벤타일리칸과 나의 관계

는 그대로 취조자와 심문 대상의 모습을 띄게되었다.사실, 그런 식으로 해서도 많은 말

이 나올 수는 있었다. 내가 그 상황에서 느낀것은, 사람들은 능동적으로 기억하는 것 보다

어떤 계기로서 떠오르는 생각이 더많다는 점이다.생각이라는 건 정신의 연쇄적인 작용이

기 때문에 하나의 생각에 미치기 위해서는그 생각에 필요한 재료가 공급되어야 한다. 이

재료는 단순한 것일 수도 있고 복잡한 것일 수도 있지만, 대개는 생각 외로 간단한 경우

가 많다.간단하게 예를 들어서 길을 가다가 문득 빨간색을 본 사람들이 평소에는 생각하

지 않았던 시시콜콜한 추억, 사과에 관련된 일이라든가 신호등, 우체통, 빨간 겉표지의 책

같은 식으로 아주 약간의 공통점 밖에 없는 일화들을 떠올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.벤타일

리칸과 나의 대화(?)는 그런 수준이었다. 벤타일리칸은 나의 생각을 자극할 그런 재료

에 속하는 질문을 꺼내주었고, 그럴 때마나 나는 나조차도 기억한다는 걸 몰랐던 내

용을 술술 말했다.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한 새로운 정리였다는 접에는 긍정

적이라고 할수 있겠으나, 그러한 것들을 원론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일에서는 난색을 표

할 수밖에 없었다.자동차는 가솔린을 비롯한 다양한 연료로 엔진을 구동시켜 바퀴를

움직이게 해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까지 알고 있지만, 연료가 어떻게 소비되고, 소비된

연료가엔진에서 힘으로 바뀌는 세세한 과정까지 내가 알고 있을 리가 없잖은가?

하지만벤타일리칸은 그런 전문적이고 자세한 부분까지 알고 싶어 했고, 나는 모른다

고하는 것으로 그를 실망시켰다.눈앞에서 사람이 실망하는 걸 보는 모습을 그리 좋

광경은 아니다. 나는 처음하루를 제외한 나머지 5일을 그리 좋지 않은 기분으로

그 7일째.오늘 역시 그리 좋지 않은 기분으로 보낼 거라는 점은 안 봐도 뻔한 사실이

겠지만, 나는 벤타일리칸이 실망이 아닌 절망을 느끼고 있을 거라는 점에서 내 목숨을

걸어도 좋다.”그러니까… 백아탑이 이곳이고, 제가 있는 장소는 이쯤이라는 거로군요?”

“지도를 보니까 더 잘 알겠지?”4개의 큰 대륙으로 이루어진 니아런의 서부 대륙으로

갑자기 떨어져버린 나는 백아탑이라는 곳이 동쪽 대륙 동단에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